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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해자에게 (기억,방관자,정의)

info76776 2026. 8. 10. 01:34

목차


    드라마 나의 가해자에게 포스터

    저도 처음엔 그냥 학교 배경 단편 드라마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손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KBS 드라마 스페셜 《나의 가해자에게》는 학교폭력(학폭) 피해자가 13년 뒤 가해자를 직장 후임으로 만나게 되는 이야기인데, 가해자는 피해자를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설정 하나가 저에겐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니라 현실의 어딘가를 정확히 찌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가해자는 잊고, 피해자는 평생 기억한다

    드라마 속 3년차 기간제 교사 진우는 새로 부임한 신입 교사가 13년 전 자신을 괴롭혔던 바로 그 인물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챕니다. 그런데 그 가해자 성필은 진우를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진우에게는 평생을 따라다닌 트라우마(trauma), 즉 심리적 외상이었던 기억이 가해자에게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 셈이었습니다. 여기서 트라우마란 단순한 나쁜 기억이 아니라, 당시의 감각과 감정이 수십 년이 지나도 반복적으로 되살아나는 심리적 손상을 의미합니다.

    저도 비슷한 장면을 학창 시절에 목격했습니다. 한 친구가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쉬는 시간에도 혼자 있는 모습이 이어졌는데, 저는 그때 분위기를 망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장난이겠거니 넘겼는데, 나중에 그 친구가 다른 반으로 간 뒤에야 그게 장난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비대칭성이 학교폭력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가해자에게는 지나간 일상이지만 피해자에게는 일상 자체가 무너지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교육부가 매년 발표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의 상당수가 수년이 지난 후에도 불안과 회피 반응을 보고합니다(출처: 교육부).

    요약: 가해자에게는 흘러간 일이 피해자에게는 평생의 심리적 외상으로 남는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출발점이다.

     

    방관자 효과, 그리고 구조가 만드는 침묵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장면은 진우의 담임이 눈을 감고 손을 들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감은 사람은 진우 혼자였고, 나머지 아이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가 교실 안에서 그대로 작동하는 장면입니다. 방관자 효과란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개입을 회피하게 되는 심리 현상으로, 사회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타네가 1968년 처음 규명한 개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진우 본인이 교사가 된 뒤에도 처음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점입니다. 은서라는 학생이 반복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권력 관계와 고용 불안 앞에서 행동을 미루는 모습은, 방관이 단순히 개인의 용기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각이 엇갈립니다. "교사 개인의 용기와 의지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의견에 절반만 동의합니다. 제 경험상, 구조 자체가 침묵을 강제하는 상황에서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방관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은 교원의 즉각적인 개입 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그 실행을 가로막는 학교 내부 권력 구조에 대한 제도적 보완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드라마가 보여주는 구조적 방관의 세 가지 층위

    • 학생들의 방관: 눈을 감아야 손을 들 수 있는 교실의 분위기가 침묵을 정상화한다.
    • 교사의 방관: 고용 불안과 학교 내 권력 관계가 개입 의지를 꺾는다.
    • 제도의 방관: 담임 교사가 학교폭력 담당 교사를 겸하는 구조가 이해충돌을 만든다.
    요약: 학교폭력의 지속에는 개인의 비겁함뿐 아니라 구조적 방관이 함께 작동한다.

     

    복수의 의미와 회복적 정의, 드라마가 남긴 질문

    진우의 어린 시절 다짐은 교사가 되어 자신 같은 아이가 없는 교실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최선의 복수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대사가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단순히 가해자에게 같은 고통을 돌려주는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가 아니라, 피해 경험을 의미 있는 변화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에 가까운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회복적 정의란 처벌보다 관계 회복과 피해 복구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 방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저는 드라마의 한계도 함께 보입니다. 진우가 결국 피해자 은서를 지켜내고 가해자 성필과 대면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개인의 용기와 선택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실제 학교폭력 피해 회복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완결되기 어렵고, 위기개입(crisis intervention), 즉 전문적인 심리 지원과 제도적 개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피해자가 먼저 용기 내어 말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드라마 속 은서는 이미 수십 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습니다. 제 경험상도 그렇습니다. 말을 못 한 게 아니라, 말을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지점이 시스템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이유라고 봅니다.

    요약: 복수보다 깊은 변화를 꿈꾼 진우의 선택은 회복적 정의의 언어로 읽히며, 동시에 구조적 지원 없는 개인의 용기에 기대는 현실의 한계를 드러낸다.

     

    자주 묻는 질문

    Q. 드라마 《나의 가해자에게》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웨이브, 왓챠, 애플 TV에서 풀 버전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KBS 드라마 클래식 채널에서는 요약본을 통해 결말까지 확인 가능합니다. 런닝타임이 한 시간 이내라 부담 없이 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Q. 학교폭력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학교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은 전문적인 심리 지원 없이는 장기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부 산하 Wee 센터나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통한 전문 상담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Q. 방관자도 학교폭력 가해자로 볼 수 있나요?

    A. 이 부분은 의견이 갈립니다. 법적으로는 직접 가해 행위에 해당하지 않지만, 방관이 폭력의 지속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책임을 묻는 시각도 있습니다. 개인의 용기 문제이기도 하지만, 침묵을 강제하는 집단 구조가 선행한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Q. KBS 드라마 스페셜이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A. KBS 드라마 스페셜은 40년 이상 이어져 온 단편 드라마 시리즈로,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온 프로그램입니다. 《나의 가해자에게》는 그 수백 편의 작품 중 완성도와 메시지 면에서 손꼽히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결론

    《나의 가해자에게》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드라마가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 아무 말도 못하고 지나쳤던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우처럼 교사가 된 것도 아니고, 나중에 그 친구를 다시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그대로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질문이 더 무겁게 남습니다. 방관자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가해자가 잊었다면, 피해자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가. 단편 드라마 한 편이 이 정도 질문을 던진다면, 한 번쯤 직접 보시길 권합니다. 저처럼 잠시 불편해지는 경험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불편함이 꼭 나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TfjL7D8Ff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