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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남매의 여름밤은 할아버지가 혼자 살고 있는 집에 손녀 옥주와 남동생 동주 그리고 아버지가 함께 머물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가족들은 한집에 모여 여름을 보내며 서로의 일상을 마주한다.
특별히 거대한 사건이 벌어지는 영화는 아니다.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무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평범한 시간 속에서 가족이라는 관계가 조금씩 드러난다.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가족을 아주 특별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서로에게 서운하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며 각자의 삶 때문에 멀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특히 할아버지의 집이라는 공간은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곳에는 가족이 함께했던 시간이 쌓여 있고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평범한 순간들이 머물러 있다.
슬픔을 잊어버린 나는 나쁜사람 일까?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는 슬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어떨까?
처음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생각나는 사람이 된다.
그러다가 몇 달 동안 한 번도 떠올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이상한 죄책감이 생긴다. 내가 그 사람을 잊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소중했던 사람인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지?
하지만 어쩌면 사람은 원래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슬픔이 계속 같은 크기로 남아 있다면 우리는 일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은 조금씩 작아지고 그 자리에 평범한 하루가 들어온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기억하기 때문에 매일 의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진을 보지 않아도 얼굴을 알고 있고 이름을 떠올리지 않아도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다. 어쩌면 잊는다는 것은 기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와 관련된 내 경험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렀다.
그전까지 나는 할아버지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병인지 자세하게 알지는 못했다.
아빠가 할아버지에게 건강보험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잠깐 들은 적이 있었고 그럴 때면 할아버지가 어디가 아프신가?
정도로만 생각했다. 어린 나에게는 그것이 크게 심각한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엄마가 나를 깨웠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고 했다. 장례식장에 가야 할 것 같으니 준비하라고 했다.
잠에서 깨어 옷을 입고 차에 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장례식장으로 가는 동안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고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때는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죽음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사진 속 할아버지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많은 기억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장면들이 하나씩 지나갔다.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갑자기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눈물이 정말 많이 났다. 주변 사람들은 슬픔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냥 울었다. 그런데 엄마가 나를 말렸다. 그때는 왜 엄마가 나를 말렸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아빠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아들이었던 아빠가 가장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아빠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힘들다는 내색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아빠가 왜 울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너무 슬퍼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는데 아빠는 왜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을까.
장례식이 끝난 뒤 아빠는 장례식장에 남았고 나와 엄마 형은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조금 현실감이 들었다.
사람이 이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구나. 어제까지 존재했던 사람이 오늘은 더 이상 내 앞에 없다. 전화를 걸 수도 없고 다시 만날 수도 없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후 시간이 지나 납골당에 가게 됐다. 그때의 나는 이미 초등학교 6학년 때보다 조금 더 자라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예전보다 아빠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납골당에서 아빠가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이 정말 슬퍼 보였다. 단순히 슬프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아빠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아빠도 분명 많이 슬펐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 슬픔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큰 슬픔을 혼자 견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제야 나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람마다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 또 다른 어려움이 생겼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잊고 살아가는 나 자신이 힘들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시간이 꽤 흐른 뒤에는 평소에 할아버지를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내 일상을 살아갔다. 학교생활을 하고, 친구들과 만나고 새로운 일을 경험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할아버지를 이렇게 쉽게 잊고 살아가지?
그게 오히려 미안했다.
그때는 그렇게 슬펐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이유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람은 과거에 머물러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할아버지를 잃었다는 사실을 처음 경험했고 그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할아버지가 없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비어 있던 자리가 조금씩 일상의 일부가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할아버지를 생각해도 눈물이 나지 않게 됐다.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내가 느꼈던 슬픔은 할아버지를 잊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그때의 슬픔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으로 바뀐 것뿐이다. 사람의 기억은 이상하다.
어떤 순간은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은 희미해진다. 나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갔던 일을 기억한다.
영정사진을 보았던 순간도 기억한다. 많이 울었던 것도 기억한다. 아빠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던 모습도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슬픔을 지금 똑같이 느끼지는 못한다. 어쩌면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슬픔이 영원히 같은 크기로 남아 있다면 우리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어느 정도 잊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잊음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제 할아버지를 자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할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많이 울었다는 사실만으로 사랑을 증명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고 해서 그때의 슬픔이 거짓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방식으로 슬퍼했고 지금의 나는 지금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다들 있을때 잘 하고 후회하지말자
잔잔한 가족이야기가 보고싶다면 한번쯤은 볼만하다. 티빙이나 웨이브에서 시청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