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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프로파일러가 탄생한 건 1990년대 후반, 연쇄 성범죄 사건이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던 바로 그 시절이었습니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을 보면서 제가 처음 든 생각은 "이게 실화라고?" 였습니다. 믿기 어려울 만큼 촘촘한 디테일이 화면 안에 가득했고, 2화가 끝날 무렵엔 편집 의자에서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프로파일링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의 이야기
이 드라마의 배경은 1998년입니다. 당시 대한민국 경찰에는 범죄행동분석(Criminal Behavioral Analysis), 즉 프로파일링 개념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프로파일링이란 범죄자의 행동 패턴·심리·생활환경을 분석해 용의자 범위를 좁혀 나가는 수사 기법을 말합니다. 미국 FBI는 1970년대부터 이를 제도화했지만,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비행기 조종사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생소한 개념이었다고 합니다.
드라마는 그 시대의 공백을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형사들은 전과자·조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용의자를 확정하고, 물리력으로 자백을 받아냅니다. 주인공 송하영은 그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혼자서는 막을 방도가 없었죠.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면서 느낀 답답함은 단순한 극적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배경에 깔려 있으니까요.
일반적으로 수사 드라마라고 하면 형사가 발로 뛰며 증거를 모으는 장면이 핵심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은 그보다 훨씬 앞 단계인 "왜 이 사람이 이런 짓을 했는가"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그 차이 하나가 장르 전체를 다르게 만듭니다.
범죄심리 수사의 결정적 장면, 숫자 코드와 취조 심리전
드라마에서 제가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된 장면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절도범이 피해 가구의 벽과 초인종에 숫자를 적어 놓는 장면입니다. 성인 남자는 1, 성인 여자는 2, 어린아이는 3으로 가족 구성원을 표기하고, 남자가 있는 집은 피하고 여성 단독 거주 가구만 골라 범행한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것이 범죄행동분석에서 말하는 피해자 선택 패턴(Victimology)입니다. 여기서 Victimology란 범죄자가 어떤 기준으로 피해자를 선택하는지 분석하는 분야로, 프로파일링의 핵심 구성 요소 중 하나입니다.
두 번째는 취조실 장면입니다. 송하영은 미성년 용의자를 앞에 두고 처음에는 담배 한 개비를 건네며 말을 트게 만듭니다. 그다음 진술서 작성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질문을 이어 나가 무의식 중에 진심이 흘러나오게 유도합니다. 이것은 비구조화 면담(Unstructured Interview) 기법, 즉 딱딱한 질문지 없이 대화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보를 끌어내는 방식입니다. 이론서에서 읽었을 때와 실제 화면에서 볼 때의 온도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학교에서 친구 한 명이 갑자기 말수가 줄었을 때, 저도 비슷한 방식을 본능적으로 썼습니다. 대뜸 "무슨 일 있어?"라고 묻는 대신, 같이 밥을 먹으면서 다른 이야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그렇게 분위기를 풀고 나서야 그 친구가 혼자 지내고 있었던 이유를 털어놨습니다. 프로파일링의 논리가 사실 일상 속 사람 이해와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더 선명하게 알게 됐습니다.
- 피해자 선택 패턴(Victimology): 범죄자가 남성 거주 가구를 피하고 여성 단독 가구만 노린 행동에서 도출
- 비구조화 면담: 취조 형식 없이 일상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백을 유도하는 기법
- 현장 흔적 분석: 벽의 숫자, 지문 여부, 침입 방식으로 동일 범행 여부를 판단
원작 기반이라서 더 무거웠던 이유
이 드라마는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의 논픽션 르포를 원작으로 합니다. 권일용 교수는 드라마 전반의 자문을 직접 맡았고, 당시 시대상과 수사 과정의 디테일을 철저히 반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서는 동기 없는 연쇄 성범죄 사건이 잇따랐고, 경찰은 과학 수사보다 자백에 의존하는 수사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출처: 경찰청).
제가 직접 2화까지 보고 느낀 것은 단순히 "잘 만든 드라마"가 아니었습니다. 편집을 하면서 생략할 부분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는데, 그 이유는 대사 하나하나가 허투루 쓰인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범죄자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장면에서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형성된 왜곡된 자아상이 범행의 근본 원인으로 제시됩니다. 이것은 범죄심리학에서 말하는 애착 장애(Attachment Disorder)와 연결됩니다. 여기서 애착 장애란 어린 시절 주 양육자와 안정적인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지 못해 이후 관계와 행동에 왜곡이 생기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반복된 폭력 속에서 자란 아이가 타인을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이 드라마 전체의 심리적 뼈대입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강력범죄 가해자 중 상당수가 유년기 폭력 노출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범죄 예방을 위한 조기 개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드라마는 그 연구 데이터를 인물의 삶으로 번역해서 보여 준 셈입니다.
아쉬운 점을 솔직히 말하자면, 실제 사건 기반이다 보니 긴장감이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몰입에는 탁월하지만 연속으로 보기엔 꽤 무겁습니다. 프로파일링 과정에 비중을 크게 두다 보니 일부 전개가 느리게 느껴지는 구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게 단점이라기보다는 이 장르의 특성이라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연기, 연출, 대본이 만들어 낸 시너지
범죄 심리 수사물은 배우의 연기력이 장르 전체의 신뢰도를 결정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장르에서는 주연 배우의 카리스마가 작품을 이끌어 간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이 작품을 보고 난 뒤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조연들의 연기가 오히려 몰입도를 붙잡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신문 장면에서 극한으로 몰리는 용의자 역할을 맡은 배우는 대사가 많지 않음에도 표정과 어투 변화만으로 서사를 끌어당겼습니다.
대본에도 특이점이 있었습니다. 범죄자를 단순한 악인으로 그리지 않고, 어떤 환경과 선택의 누적이 그를 만들었는지를 서술합니다. "살인 행각에 대해 죄책감이 없다"는 말을 하는 인물이 동시에 할머니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다루는 방식이 단순한 선악 구도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 줍니다. 이것은 범죄심리학에서 말하는 도덕적 분리(Moral Disengagement) 현상, 즉 특정 상황이나 대상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완전히 차단하면서 다른 맥락에서는 정상적인 감정이 살아있는 상태를 보여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연출 측면에서는 1990년대 후반의 시대적 질감을 복원하는 데 공을 많이 들인 것이 느껴집니다. 경찰서 내부의 낡은 장비, 위장 수사를 위해 여장을 하는 형사, 포장마차 장면의 조명까지 전부 그 시대의 체감 온도를 맞추고 있습니다. 시대 고증에 자문을 받았다는 사실이 화면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제가 편집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건 이 장면들 중 어느 하나를 빼야 할 때였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버릴 게 없어서 오히려 더 힘들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실화 기반인가요?
A. 맞습니다.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의 논픽션 르포가 원작이고, 권 교수가 드라마 전반에 걸쳐 자문을 맡았습니다. 1990년대 후반 실제 연쇄 범죄 사건들을 바탕으로 구성됐으며, 시대상과 수사 과정의 디테일이 철저히 반영됐습니다.
Q. 프로파일러가 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요?
A. 일반적으로 심리학이나 범죄학 전공이 기본이 되고, 이후 경찰대나 수사 기관을 통해 범죄행동분석 전문 과정을 거칩니다. 드라마 속 배경처럼 1990년대에는 해당 직군 자체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제도화된 프로파일러 양성 체계는 이후 꾸준한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Q. 범죄 심리 수사 드라마인데 잔인한 편인가요?
A. 제가 직접 보니 노골적인 묘사보다는 심리적 긴장감에 집중하는 방식입니다. 범죄 장면 자체를 자극적으로 보여 주기보다 그 이전과 이후의 심리 과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다만 긴장감이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무겁게 느껴질 수는 있습니다.
Q. 범죄 행동 분석(프로파일링)은 실제 수사에서도 효과가 있나요?
A. 프로파일링이 수사의 만능 도구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용의자 범위를 좁히는 보조 수단입니다. FBI의 연구에 따르면 프로파일링은 단독으로 범인을 특정하기보다 다른 물적 증거와 함께 사용될 때 수사 효율이 높아집니다. 이 드라마가 묘사하는 것처럼, 핵심은 증거와 심리 분석을 함께 쌓아가는 과정입니다.
결론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범인을 잡는 과정보다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는 과정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실제 사건과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만큼 묵직한 여운을 남기며, 범죄 심리와 프로파일링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꼭 볼 만한 수사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