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공감도 없던 흉악범이 타인의 기억을 이식받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이야기. 영화 「크리미널」(2016)은 케빈 코스트너, 게리 올드만, 토미 리 존스, 라이언 레이놀즈가 한 스크린에 모인 작품입니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때는 단순한 스파이 액션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예상보다 훨씬 깊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습니다.기억이식 실험, 그 배경과 설정영화의 출발점은 전두엽 손상(frontal lobe damage)이라는 의학적 설정입니다. 전두엽이란 인간의 뇌에서 감정 조절, 공감 능력, 도덕적 판단을 담당하는 부위입니다. 주인공 제리코는 태생적으로 이 기능이 결여된 사이코패스로 묘사되는데, 바로 이 결함이 역설적으로 CIA의 기억 이식 실험 대상이 되는 조건이 됩니다.CIA가 쫓는..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파일러가 탄생한 건 1990년대 후반, 연쇄 성범죄 사건이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던 바로 그 시절이었습니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을 보면서 제가 처음 든 생각은 "이게 실화라고?" 였습니다. 믿기 어려울 만큼 촘촘한 디테일이 화면 안에 가득했고, 2화가 끝날 무렵엔 편집 의자에서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프로파일링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의 이야기이 드라마의 배경은 1998년입니다. 당시 대한민국 경찰에는 범죄행동분석(Criminal Behavioral Analysis), 즉 프로파일링 개념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프로파일링이란 범죄자의 행동 패턴·심리·생활환경을 분석해 용의자 범위를 좁혀 나가는 수사 기법을 말합니다. 미국 FBI는 1970년대부터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복수극이라길래 단순한 권선징악 드라마겠거니 했는데, 첫 두 편만 봤는데 제가 학생회 예산 문제로 혼자 끙끙 앓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돈과 권력이 맞닿는 순간 사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드라마 법쩐은 그 지점을 꽤 정확하게 건드립니다.드라마가 설정한 세계관, 생각보다 치밀했습니다법쩐은 SBS에서 매주 금토 밤 10시에 방영되는 드라마로, 1·2화는 본격적인 복수가 시작되기 전 인물들의 서사를 쌓는 데 집중합니다. 주인공 은용은 소년원 출소 직후 갈 곳 없는 처지에서 사채 시장에 발을 들이고, 검사 태춘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검찰 내부에서 철저히 무시당하며 특수부를 꿈꿉니다.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 편집으로 전개되는 방식이 제가 직접 봤을 때 예상보다 훨..
솔직히 저는 주식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숫자 그래프 보여주고 "이 종목 사면 돼요" 같은 흐름이 반복될 것 같아서요. 그런데 티빙 오리지널 「개미가 타고 있어요」는 달랐습니다. 백화점 판매원, 편의점 알바, 족발집 사장까지, 각자의 절박함을 안고 주식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깊이 있게 그려져 있었습니다.주식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 다들 비슷했다드라마 속 인물들이 주식을 시작하는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감정은 놀랍도록 비슷했습니다. 전세 계약금을 날릴 위기에 처한 사람,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삼성전자 주식을 발견한 사람, 그리고 오랜 방황 끝에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며 삶을 재건하려는 사람까지. 처지는 달라도 "이것 아니면 없다"는 절박함만큼은 하나..
한때 잘나가던 사람이 10년 세월에 치여 평범한 중년이 되어 버린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MBC 신작 「오십프로」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이 질문을 계속 붙들고 있었습니다. 방영 1회차에 시청률 7.7%를 기록하고 글로벌 18개국에 수출된 이 작품, 과연 무엇이 사람들을 끌어당겼는지 제가 직접 들여다봤습니다.드라마 배경: 이 설정, 왜 지금 이렇게 반갑게 느껴질까요솔직히 국정원 첩보물이라고 하면 처음엔 '또 그 장르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십프로」는 시작부터 달랐습니다. 10년 전 여객선 안에서 벌어진 USB 쟁탈전, 그 혼돈 속에서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진 세 인물.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블랙 요원이었던 그림자 정호명은 갱년기 판정을 받은 중년 남성이 되어 중국집..
지하 100층짜리 창고 안에서 평생을 산다면, 그게 정말 '안전한 삶'일까요? 애플 TV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사일로」를 처음 접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그거였습니다. 철저한 통제 속에서 유지되는 질서가 과연 인간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을 가두기 위한 것인지. 그 경계가 이 드라마에선 놀랍도록 얇습니다.사일로라는 세계관 — 익숙한 공간, 낯선 진실학교 다닐 때 오래된 창고를 청소한 적이 있었습니다. 평소엔 자물쇠만 걸려 있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공간이었는데, 막상 열고 들어가 보니 수십 년 된 물건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건 단순한 호기심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 공간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던 걸까' 하는 묘한 두려움 같은 것이요.「사일로」..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탈출 영화는 그냥 액션 아닌가"라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1973년작 《빠삐용》은 실존 인물 앙리 샤리에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억울하게 종신형을 선고받은 남자가 남미 식민지 교도소에서 자유를 되찾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막상 보고 나니 이건 단순한 탈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자유를 잃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생존의지 — 포기를 모르는 남자의 시작영화는 1931년 파리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파피용은 거리에서 보석을 팔며 살아가는 인물인데,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 누명을 쓰고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명 높은 교도소로 끌려갑니다.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인 채 배에 올라탄 그는, 이미 탈출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
코드네임 66. 남북한 전체를 통틀어 생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전설적인 공작원이 지금은 평범한 회사 부장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 딸이 납치되는 순간 드라마는 완전히 다른 얼굴로 돌변합니다. 솔직히 첫 화를 보면서 이 설정이 이렇게까지 몰입감 있을 줄은 예상 밖이었습니다.참고 참다 터지는 액션, 왜 이 장면이 통하는가드라마 김부장이 1~2화에서 가장 먼저 보여주는 건 '참는 남자'입니다. 식당에서 깡패들이 시비를 걸어도, 회사에서 부지점장이 법인카드 비리를 눈 감으라고 해도, 주강찬 회장 앞에서 무릎까지 꿇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김부장은 버팁니다. 이 설정이 처음엔 좀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보다 보니 오히려 그게 폭발 직전의 에너지를 쌓아두는 장치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제가 학창 시절에 비슷한 감정을..
돈가방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까지 바꿀 수 있을까요. 영화 「머니백」은 김무열, 박희순, 이경영이 주연을 맡은 한국 코미디 범죄 영화로, 거액의 돈가방을 둘러싸고 전혀 접점이 없던 인물들이 하나씩 엮이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룹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는 단순한 오락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보고 나서 중학교 때 길에서 지갑을 주웠던 기억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도 흔들렸던 마음이 생각났거든요.돈가방 하나로 시작되는 빠른 전개, 정말 쉴 틈이 없습니다코미디 영화를 고를 때 가장 걱정되는 건 뭔가요. 저는 초반 30분이 지루한 경우입니다. 웃음 포인트가 뒤에 몰려 있으면 그 전까지 버티는 게 쉽지 않거든요. 「머니백」은 그 문제를 거의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오프닝부터 캐릭터들이 각자의 ..
드라마를 보다가 "이게 지상파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온 적이 있습니까. 저는 MBC 드라마 「검은 태양」 1화를 켰다가 해상 장기 밀매 장면에서 리모컨을 잠시 내려놓았습니다. 150억 원 규모의 제작비를 투입한 국정원 첩보 블록버스터라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이 정도 수위와 스케일일 줄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기억 상실 설정, 식상하다고요? 이건 좀 다릅니다기억 상실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너무 많아서 이제 식상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검은 태양」은 접근 방식이 달랐습니다.주인공 한지혁은 1년간의 잠복 임무 도중 동료 2명과 함께 적에게 공격당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그 기간의 기억이 통째로 지워진 상태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